듣는 귀가 큰 부모가 가장 좋은 부모입니다.

by 청동거울 posted Sep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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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듣는 귀가 큰 부모가 가장 좋은 부모입니다.

 

 

눈이 오던 지난 겨울 어느 일요일. 늦은 점심을 먹으러 한 식당에 들어섰습니다. 꽁꽁 언 바다를 보겠다는 딸 아이의 말에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 때 바로 옆 테이블에 한 어머님과 초등학교 4~5학년 쯤 되어 보이는 아들과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처음 식당에 들어설 때부터 모자간에 무언가 쿵쿵쿵 부딪히는 느낌이 있어 자꾸만 눈길이 갔습니다. 잠시 후 식당이 떠들썩 할 정도로 이 모자들의 요란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큰 아들이 말을 시작했습니다. ‘어제 게임했는데 완전 짜릿했어.’ 이야기를 들어 보니 성인 게임인 듯 했습니다. 곧 바로 어머님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렸습니다. ‘어른들이 하는거 아냐? 어떻게 했어?’ 이 질문에 아주 의기양양한 ‘누나 민증으로 했지. 사진만 바꾸면 되잖아’ 큰 아들의 대답이 들려옵니다. 다시 어머님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거 범죄야. 범죄자 되고 싶어? 감옥 갈거야?’. 아들은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인상을 쓰며 딴청을 부렸습니다. 마치 어머님의 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이번에는 작은 아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나 게임 팩 사고 싶은거 있는데 엄마가 저번에 안 사준거 있잖아. 그거 친구가 준대. 그래서 받으려고.’. 아직 큰 아들의 말에 화가 안풀린 어머님은 이번에는 작은 아들에게 ‘네가 거지야? 받기만 해 봐. 가만안 둬.’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작은 아들도 머쓱해서 조용해졌습니다. 이제 좀 조용히 밥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 찬란에 큰 아들의 아주 담담하고 냉소적인 말 한 마디가 날아왔습니다. ‘거봐. 내가 여자랑 말 섞지 말랬지!’ 그 후 식사가 끝날 때 까지 그 테이블은 아주 조용한 가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요일 오후 눈 오는 바닷가 식당에 올 정도면 아마도 가족들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모두에게 있었을텐데 참 안타까운 시간만 흘렀습니다. 혹 이런 모습이 우리들에게는 없을까요? 옆에서 지켜보는 저는 사춘기에 접어들어 자신의 모습을 과장되게 보이고 싶고 힘도 과시하고 싶은 큰 아들의 마음도 알겠고, 게임기가 갖고 싶은 작은 아들의 마음도 알겠고, 이를 지켜보며 불안하고 걱정되어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어머님의 마음도 알겠는데 과연 서로는 알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태교 시간에 만나는 부모님들에게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질문을 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이 대화를 잘 할 수 있는 부모입니다. 그런데 놀이 수업에서 만나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 대화를 많이 하는지 물어보면 아이가 아직 말을 못해서 대화는 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나옵니다. 그리고 대화법 수업에서 만나는 초등학생 또는 중・고등학생들의 부모님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사춘기가 뭔지. 도무지 대화가 안돼요.’라는 한 숨 섞인 대답이 돌아옵니다. 참! 이상하지요? 아이가 태아일 때는 대화를 많이 하리라 다짐했는데 영・유아기는 아이가 말을 잘 못해서 대화를 못하고 다음으로 오는 아동기와 청소년기는 말이 안통하고... 그럼 우리는 대화를 잘 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는 꿈과 소망을 언제 이룰 수 있을까요? 바로 지금 부터입니다.

 

대화를 잘 하는 부모와 그렇지 못 한 부모의 차이는 딱 한 가지입니다. 이야기를 듣느냐! 이야기를 하느냐! 잠시 대화의 정의를 짚어보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대화란 둘 이상의 사람이 만나 서로의 생각과 입장, 느낌 등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눈을 맞추고 언어적인 메세지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 표정, 말투, 호흡 상태 등에서 나타나는 비언어적인 메시지, 사건만이 아니라 그 사건 속에 숨겨진 속 마음 까지 읽고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로 상대의 속마음이나 감정 보다는 사건 중심의 내 마음을 먼저 이야기 하게 되어 대화가 아니라 독백, 잔소리, 훈계 등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문에 앞에서 만난 어머님과 아들들의 대화같은 상황들이 일상에서 심심찮게 발생하게 되지요. 만약 어머님이 아들의 행동 결과만이 아니라 자신을 과시하고 드러내고 싶은 사춘기 아들의 마음을 먼저 읽었다면 대화의 마무리는 좀 달랐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부모님, 듣는 귀가 큰 부모님의 마음 속에는 아이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있습니다. 이런 부모님은 엉뚱하고 잘못된 행동을 한 아이에 대해 스스로 잘못을 알고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부모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아이에게 심으려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흥분된 감정을 진정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부모님의 양육을 받은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 할 수 있고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며 타인의 감정 또한 읽을 수 있어 따뜻한 리더쉽을 가진 아이로 성장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지시나 강요로 인해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동기와 판단으로 행동을 하게 되어 도덕적인 가치관도 내재화되어 있어 혼자 있어도 늘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는 부모님, 말하는 입이 큰 부모님은 아이에 대해 늘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지시하고 설명하고 행동에 대해 되고 안되고의 제한을 자꾸만 주게 되어 아이의 자율성을 저해하게 됩니다. 자율성이 발달하지 못한 아이들은 스스로의 내적 기준을 마련하지 못해 외적인 재제가 없을 경우 행동과 생각에 있어 실수가 많이 발생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이야기를 듣느냐! 이야기를 하는냐! 우리는 그 동안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참으로 많이 하였습니다. 이제 부터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며 올바른 행동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듣는 귀가 큰 부모가 되어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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